!스포 주의!

다시 어둠 속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윤기 있는 목소리에 희미하게 방울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가냘픈 음색을 들은 도련님의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고, 굳어 있던 몸이 풀린다.
“츠쿠모가미! 방울 아가씨였군.”
누군가 이나리 신사에 바친 방울이 요괴가 된 것이, 이나리의 권속 중에서는 방울 아가씨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물건이 100년의 세월을 거쳐 요괴로 변한 것을 츠쿠모가미라고 한다. 이 세상의 평범한 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것이 말을 걸었는데도 의아해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도련님은 사람의 몸으로 츠쿠모가미의 이름을 대뜸 알아맞히더니, 더 이상은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다시 등롱을 들고 밤길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 발밑의 어둠 속으로, 아까 그 젊디젊은 목소리가 따라온다.
“오늘은 왜 이누가미[犬神] 님도 하쿠타쿠[白澤] 님도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달도 없는 밤에 위험하게…….”
“아니, 네가 어떻게 두 사람을 알고 있느냐?”
약간 놀란 듯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재미있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부근의 웬만한 요괴들은 다 그분들을 알고 있지요. 저 같은 작은 요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이 센 분들이시니까요.”
(10-11쪽) ‘白澤’하니까, 《호오츠키의 냉철》에 ‘백택’이 생각나서 다시 보기 하고 싶은데, 왜 넷플 서비스 종료 돼버렸는지 아쉽…ㅠㅜ
츠쿠모가미 付喪神/九十九神/九十九髪 (つくもがみ)
물건 즉 무생물뿐만 아니라 생물, 자연의 동식물 따위에 정령이 서리는 경우도 포함하는 듯(구미호, 나무 요괴,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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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10대조합(댓글+) 회원으로 운송선 3척에 다수의 거룻배를 보유한 큰 운송업체/분점 약재상 나가사키야의 금지옥엽 도련님 이치타로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지만, 주위에 난무하는 온갖 요괴들과 소통이 가능했는데…
🔳 도련님 이치타로 주변 요괴들
◾️이누가미(犬神): 인간명 사스케. 운송업체 쪽 행수.
◾️하쿠타쿠(白澤): 인간명 니키치. 약재상 쪽 행수.
— 둘 다 어린 도련님 병석에 있을 때, 외할배(나가사키야 전 쥔장; 부친은 그 밑에 행수였다가 데릴사위로 가업 계승)가 보디가드 겸 보모 역할로 데려왔는데, 완전 금이야 옥이야 과보호~
◾츠쿠모가미s
▪️방울 아가씨: 이야기가 시작하는 한밤중 괴한한테 쫓겨 위기에 빠진 도련님을 위한 구원의 손길

▪️병풍 요괴: 도련님 방 안 병풍에 깃들인, 성깔 사나워 사스/니키 2인조한테 개기다가 혼쭐나도 여전히 존심 빳빳
오래된 병풍이 요괴로 변한 츠쿠모가미는 방구석에 놓여 있는 병풍의 그림 그대로 바둑판무늬라는 별명이 붙은 요괴인데, 화려한 바둑판무늬의 옷을 질질 끌리게 입고 가부키 배우 같은 모습을 보인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도련님은 지금까지도 가끔 대리 역할을 부탁하곤 했다.
(27-8쪽) 몰래 빠져나간 도련님 대신 바꿔치기했던 걸 사스/니키 2인조에게 들켜버린 상황

🔻반쪽짜리 먹줄통: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츠쿠모가미가 다 될 뻔한 순간 주인 목수한테 앙심 품은 봇짐장수가 훔쳐가 망가뜨리는 바람에, 한을 품고 부활시켜줄 약에서 난다고 여긴 향기를 쫓아 약재상들만 타겟으로 약 내놔라 위협하다가 죽이고 다니는데…
香(かお)りがする…
향기가 난다…
◽️야나리: 미니미 미니언즈 같아 도련님의 수족처럼 이런저런 심부름 하러 다니고 받는 다과 포상 좋아해
마중을 나온 것은 야나리라는 요괴였다. 키가 몇 촌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요괴다. 집안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 일도 없다. 이치타로의 집에는 야나리가 몇이나 나타나고 때로는 다과를 받아 가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집안 사람들이 이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26쪽)

◽️자코츠바바: 최초 피해자 목수의 도구들이 범인에 의해 제각각 사방팔방으로 팔려 버린 사실이 아무래도 미심쩍었던 도련님이 야나리들과 더불어 탐문 조사 보낸 요괴들 중 하나. 용의자(?) 먹줄통을 첫 발견하고 언급해 결정적 실마리 제공.
주로 들판에 출현하며 큰 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요괴. 오른손에는 푸른 뱀, 왼손에는 붉은 뱀을 들고, 이 뱀들을 조종하여 남편 뱀의 무덤을 해친 사람을 덮친다고 함.
(242쪽. 역주 32.)
그러고 보니 내가 망치를 발견한 가게에 귀여운 먹줄통이 있었어. 세공이 어찌나 정교하던지…… 아마 사람의 손이 먹줄통을 움켜쥐고 있는 모양의 조각이었던 것 같아. 섬세한 무늬도 빽빽이 들어가 있고 귀한 물건이었음이 틀림없는데, 나무 바닥이 세로로 크게 갈라져 있더군. 그래서야 도구로는 쓰지 못하겠지.
(242쪽) 그 말에 딴 요괴 노데라와 야나리도 각각 끌과 톱을 찾아내면서 자기들도 봤다고 하면서, 먹줄통의 혐의가 짙어지고…
✔️일련의 사건에 대한 도련님의 Q-list
- 사당 옆 사건. 목수의 목은 왜 잘렸는가.
- 왜 봇짐장수는 사소한 일로 목수를 죽였는가.
- 훔친 목공도구를 따로 나누어 판 것은 왜인가.
- 목수는 전에 뭔가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는가.
- 살인자들이 원하는 약이란 어떤 것인가.
- 서로 다른 범인들이 똑같은 말을 하며 약재상만 덮치는 것은 왜인가.
- 살인자들이 약재상을 쉽게 죽여 버리는 것은 어째서인가.
(230-1쪽)
몸은 약하지만 머리가 꽤 잘 돌아가는 도련님, 정리하다 보니 요괴가 여러 사람한테 빙의해 살인을 저지르고 있음을 의심하게 되고, 여러 곳에서 목격된 먹줄통의 존재도 심증을 점점 굳히게 만드는데, 이때 마침 방문한 손님이 있었으니…
“이거 미코시[見越] 스님 아니십니까. 여기까지 몸소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머리를 숙인 두 사람(사스/니키 2인조)은 얼른 방석을 준비하고 자리를 권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두 사람보다 상석 취급이었다. 이치타로는 행수들보다 지위가 높은 듯한 요괴를 처음 보았다.
(중략)
“그런데 오늘 온 이유 말인데.”
미코시는 도련님에게 웃는 얼굴을 향했다. “좀 생소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도련님의 신상에 관한 일이니 잘 들어 주시오.”
(중략)
“내가 이 곳에 온 것은 가와고로모[皮衣] 님이 부탁하셨기 때문일세.”
행수들의 얼굴이 일제히 미코시 쪽을 향한다.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누가미네가 요즘 요괴들을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무슨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몸이 약한 도련님이 걱정된 것일 테지.”
“제가요? 그 분은 누구십니까?”
이치타로가 머뭇머뭇 묻자, 미코시는 또 웃었다.
“아아, 그 이름으로는 모르시는가? 오긴 말이오. 나가사키야 이사부로의 아내, 오긴. 오타에의 어머니. 자네의 외할머니지.”
“어…….”
그 말을 듣고도 이치타로는 순간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와고로모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뭐, 그냥 말한 대로지. 오긴의 본성은 요괴야. 나이가 3천 살인 대요괴지. 나하고는 옛날부터 아는 사이야.”
“요……괴?”
자신의 할머니가 대요괴라는 말을 듣고 대뜸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이치타로에게, 기분 좋은 미코시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런, 이런, 전혀 못 믿겠나? 어째서 도련님에게 요괴들이 붙어 있는 거라고 생각하시오? 게다가 도련님은 요괴가 있으면 그게 요괴라는 걸 알지? 설령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해 있다 해도 말이야.”
“아…….”
듣고 보니 그 말대로다. 이치타로에게는 요괴가 보인다. 가게 사람들 눈에는 비치지 않는 야나리의 모습도 손에 잡힐 듯이 알 수 있다. 형은 요괴 행수 둘. 놀이 상대는 츠쿠모가미 병풍요괴다.
비가 마른 땅에 스며드는 것처럼 스님의 말이 서서히 머리에 들어온다. 그랬구나 하고 납득하고 만다.
“그럼…… 저도 요괴인가요?”
진지한 얼굴로 묻자, 미코시의 스님은 소리높여 껄껄 웃었다.
“예로부터 요괴여우나 망령과 교합하여 아이를 낳은 사람은 꽤 많은데, 태어난 아이들은 사람으로서 생을 받지. 다소는 비범한 힘을 물려받는 모양이지만.”
(268-71쪽)
충격적인 외할머니 정체에 설상가상 더욱더 경악스러운 자기 출비에 직면하게 되는 도련님…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아이를 원한다고, 여자는 신께 기도했어. 그 간절한 마음에 여자의 어머니가 지고 말았지. 앞으로 자신이 종자가 된다는 조건으로, *다키니텐에게서 비약을 받은 거다. 죽은 사람의 혼을 되살리는 신의 약인데, 백리 밖까지 퍼지는 향기를 갖고 있지. 이것은 반혼향(返魂香)이라고 한단다.”
“죽은 사람의 혼!”
도련님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손가락이 화로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것을 힐끗 보기는 했으나, 미코시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자는 어머니와 맞바꿀 생각은 없었겠지만, 어머니는 이미 향을 남기고 떠난 후라 손을 쓸 수가 없었어. 그래서 결구 다키니텐 님으로부터 받은 향을 쓴 거지.”
“……태어났나요? 그 향 덕분에.”
“죽은 아이의 혼이 이 세상에 되돌아왔지. 그래, 오타에는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크게 숨을 내쉰다.
이름이 나오지 않아도 어머니 오타에와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나는 죽어야 했던 아이였어…….)
(275쪽)
*다키니텐[茶枳尼天] 태장계 만도라외 금강원에 사는 야차 또는 나찰. 인도의 민간신앙에서 밀교에 의해 불교에 도입되었다. 사람의 죽음을 6개월 전에 예지하여 그 심장을 먹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나리 신과 동일시된다. (역주 33. 273쪽)
자신에게서 나는 반혼향이 모든 사달의 원인임을 깨달은 도련님. 2인조가 위험을 피해 집에 숨어 있으라고 하지만, 자기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책임감에 나서기로 하는데; 미코시가 만약 나서지 않았더라면 더이상 인간들 피해를 키우지 못하게 외할머니 곁으로 데려가 버리려고 했다는 말에, 2인조 어이쿠 깨갱하며 ‘my bad, my bad’~
“가엾긴 하지만 더 이상 사람을 덮치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화재를 일으키게 둘 수도 없고.”
눈이 마주쳤다. 그 때 재빨리 다가가 이마에 호부를 붙인다. 크게 몸을 젖힌 요키치(이복형 마츠노스케를 괴롭히던 통가게 아들; 아래 일드에선 이복형으로 설정 변경)의 입에서 검은 그림자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것이 1척 정도 나왔을 때, 도련님이 혼신의 힘을 담아 칼을 내리쳤다.
엷은 연기 같은 것밖에 없는데도 이상하게 또렷한 감촉이 있었다. 칼날은 요키치의 얼굴을 스치고 무릎 바로 아래서 멈춘다. 칼에 베인 그림자는 안개처럼 흩어져, 그대로 타다 남은 불의 연기와 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 간다. 피도 나지 않고 시체도 남지 않는다. 그림자가 최후의 말을 남기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소리 없는 절규가 화재 현장에 울려퍼지며 바람에 춤추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나 남아있는 것만 같아서 귀를 막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자신밖에 보이지 않게 된 자의 단말마. 자신을 멈출 만한 강함도, 다른 것을 볼 여유도 없었다.
“반드시 강해지겠어…….”
그것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이었다.
(317-8쪽) 볼드체 부분이 ‘샤바케’의 파제인 듯한 느낌.

미미 여사의 《말하는 검》 등 에도 시리즈를 봐선지, 물건에 들러붙은 사념?요괴?가 소유자마다 옮겨 다니며 일을 치고 있다는 짐작이 쉽게 되긴 했어도, 괴담+추리 요소가 적절히 섞여서 괜춘; 나머지 2,3,4권도 다 도서관에서 빌려 차례로 읽어볼 작정~
테고시 유야(手越祐也) 주연의 2007년 드라마
야나리들 넘 귀요미, 병풍요괴는 넘 아저씨 같고, 방울 아가씨는 게이샤처럼 화사~
(노자막. 화질 몹시 구림ㅠㅜ; 일본 영상은 저작권 까다로와 언제 삭제될지 모름.)